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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고그

카알 샬롬은 그리스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로도스 섬에 남아있는 유일한 유대교 회당 입니다. 한때 유대교 구역에는 6개의 유대교 회당과 기도원이 있었습니다. 카알 샬롬은 도시아두와 시미우 거리의 모퉁이에 위치해 있으며, 1577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 됩니다. 이 건물의 전체 이름은 카알 카도시 샬롬 입니다. 금요일 밤 기도, 강도있는 주말 예배, 특별한 행사를 위해 방문객이나, 전 주민과 그 가족들이 섬을 방문할 때 기도 예배에 사용 됩니다.

로도스의 유대인 공동체는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500년 동안, 유대인 공동체의 배경은 주로 스페인 종교 재판 당시 스페인을 탈출한 유대인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많은 수의 세파르딤은 살로니카, 이스탄불, 이즈미르와 같은 다른 도시들뿐만 아니라 지중해를 건너 로도스 섬으로 갔습니다. 스페인에서 온 유대인들의 후손들은 스페인을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인 세파라드로 인해 세파르딕 유대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대규모 이주 이후, 로도스 섬의 유대인 공동체는 오늘날의 스페인어와 유사한 라디노어(유도스페인어라고도 부르는 용어 )를 사용 했습니다. 1930년대의 전성기 동안, 유대인 공동체의 인구는 약 4,000명 이었습니다.

카알 샬롬 회당의 내부는 전통적인 세파르딕 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성소의 중앙에 테바(기도문판)가 있고, 남동쪽은 예루살렘을 향합니다. 바닥은 우아한 흑백 모자이크 돌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것은 로도스 구시가에서 사용된 독특한 디자인 모티브 입니다.

1930년대에는 카알 샬롬 성소에 여성들의 좌석을 위한 발코니가 건설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여자들이 회당 남쪽 벽에 붙어 있는 방에 앉아 있었습니다. 여성 기도실(라디노어로 “라자라” 라고 부르는 용어)는 격자무늬로 장식된 창문으로 성소를 바라 보았습니다.

회당 동쪽의 뜰에는 한때 분수대가 존재했던 곳에 명판이 있고, 그 위에 5338년(1577년) 키슬레프 달이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알고 보니, 이 분수는 유대교 회당과 같은 시기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유대교 회당의 서쪽에는 종교학교(예시바)가 있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파괴 되었습니다. 카알 샬롬 성소의 흥미로운 특징은 수많은 종교적인 벽화가 그려진 장식 입니다.

카알 카도시 가돌

1523년 터키의 정복 이후 세파르딤이 로도스에 왔을 때, 그들은 이미 존재하는 유대교 회당 건물을 발견 했습니다. 그들은 이 곳을 “카할 카도시 가돌” (거룩한 대수도회) 또는 스페인어로 “카할 그란데”라고 불렀습니다. 1480년 터키의 포위전 이후인 1400년대 후반에 건설되었으며, 1480년 전쟁 때 대포에 의해 파괴된 기존의 유대교 회당을 대체 하였습니다. 교황 식스토 4세는 이전 포위전 동안 유대인들이 “용기 있게” 성채를 방어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을 고려하여, 유대교 회당 건설을 허가 하였습니다. 이 회당은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로마니오트 유대인들이 참석한 것으로 이해 되었습니다. 1500년대에 많은 수의 세파르딕 유대인들이 도착한 후, 회당은 결국 유대-스페인어 “라디노” 언어와 의식을 사용 했습니다. 1944년,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중앙 항구에 너무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독일 함선을 목표로 한 연합군의 공습으로 인해 우발적으로 피해를 입었습니다. 비록 회당은 심하게 손상되었지만, 회당을 구조하고 있는 벽은 몇 년 동안 더 세워질수 있었습니다. 그 후 20년 동안 성벽은 무너졌고, 그 지역은 잔해들로 가득 찼습니다. 2003년, 로도스 고고학 부서는 카할 그란데가 쌓은 4피트 높이의 파편들을 치웠으며, 회당의 주변 벽, 바닥, 그리고 회당의 다른 유적들을 노출 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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